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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소년은 6살 때의 꿈을 꾼다.


길 건너에 누나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과 같은 푸른빛이 도는 흑발이 아름답게 빛나는 누나. 항상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누나.


누나를 발견한 소년은 반갑게 인사하며, 빨간 신호등을 채 보지 못하고 누나를 부르면서 횡단보도를 달려간다.


이내 소년을 보는 누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옆에서 들린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소년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두 개의 전조등이 보인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소년은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곧 거칠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년의 몸은 소년의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동안 하늘에 머무른다.


―따각.


청아한 신발굽 소리가 소년의 귀에 울린다. 부드럽게 땅 위에 내려진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찬란한 후광을 두르고 하얀 날개를 단 회색 머리 여인의 모습이다.


“횡단보도는 조심해서 건너야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을 향해 여인은 활짝 웃어보이고, 다시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사라진다.


“유우!!”


그리고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누나의 모습을 끝으로, 꿈은 끝난다.



한편, 신의 명령에 따라 인간계를 관리하는 천사들이 모인 천계에서는 대천사의 고함이 울려퍼졌다.


“천사 세라피아스! 분명 인간의 수명에 간섭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여기에 지지 않고 천사 세라피아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대천사시여, 개화하지도 못하고 지게 된 꽃을 피우는 것도 정원사된 자의 사명입니다!(그러면 꽃피지도 못하고 죽게 생긴 어린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란 말씀이세요?)”


“인간의 삶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수명은 천계의 법도에 따라 정해진 것! 이것을 어기는 것은 곧 신의 뜻을 어기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제가 기르는 꽃이고, 제가 기르는 양입니다! 저에게 꽃과 양을 맡긴 이상, 그 주인이라고 해도 무의미하게 생명을 해치게 둘 수는 없습니다.(제가 맡은 인간이에요. 설령 천계의 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죽는 건 인정할 수 없어요.)”


세라피아스의 반발에 대천사가 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또 그 소리! 너는 진실로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지난 한 번을 눈감아주었다고 이제는 끝 간 데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게냐? 인간의 수명을 늘려주는 것만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삶이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어찌 모르느냐!”


“네, 기껏 피어난 꽃이 꺾이고 밟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피지 않은 꽃이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그 뿌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과연 옳습니까?(아직 세상에 나가지도 못한 아이의 생명을 세상에서 고통을 겪을까봐 거둔다고요? 말도 안 돼요.)”


“말은 잘 하는구나. 지난번 키쿠치 신이치는 그 피지 않은 꽃이라서 수명을 늘려주었느냐?”


“그야 다른 꽃을 피우는 사명을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니까요!(어린 애 아버지잖아요!)”


대천사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다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라피아스.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인간계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들의 생명을 거둬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 너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수명에 관여한 죄로 나에게 혼나는 천사는 한둘이 아니지.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고 말이다. 하지만 넌 벌써 세 번째다. 지난번까지는 내 재량으로 손을 써줄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네가 뉘우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천계의 법에 따라 널 벌할 수밖에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신 앞에 용서를 빌거라. 내 딸처럼 아끼는 너이니, 이번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무마해보마.”


“대천사이시여, 저는 천사로서 제게 주어진 사명을 제 방식대로 다했을 뿐입니다. 제가 잘못을 빌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아무래도 세라피아스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대천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썩 내키지는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세라피아스가 자꾸 이렇게 나오니 대천사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천사 세라피아스, 너는 세 번에나 걸쳐 무단으로 인간의 수명에 손을 써 천계의 법을 범하였음에도, 교만하여 그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신의 명령으로 너희가 인간계를 잘 보살필 수 있도록 감독하라는 명을 받은 몸으로서, 나 대천사 플루비아는 너의 행동을 묵과할 수 없다. 이에, 신의 이름으로 너에게 다음과 같은 벌을 내린다.”


세라피아스는 고개를 숙인 채 대천사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어떤 벌을 받을지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천사 세라피아스는 이제부터 죄인, 타천사임을 선언한다. 세라피아스의 인간계 관리직을 무기한 정지하고 인간계로 추방한다! 네가 그렇게 네가 맡은 인간들을 꽃이니 양이니 하면서 아끼니, 직접 그 인간들의 삶이 어떤지 겪으며 잘못과 교만을 뉘우치거라!”


플루비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라피아스의 몸에서 후광이 사라지고, 방금 전까지 플루비아의 앞에 서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세라피아스는 천계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면서 날개의 깃털도 하나 하나 뽑혀 나가, 세라피아스의 모습이 인간과 똑같이 변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히 벌을 받아 인간계로 떨어지는 것임에도, 세라피아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절망이나 원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벌을 내린 플루비아가 고맙기까지 했다. 천사로서 바라보기만 하던 인간계, 그 모습을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인간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사의 자리에서 보면 못 볼 꼴도 많이 보였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제 인간이 된 세라피아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자신이 맡은 인간들의 앞날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플루비아가 인간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대천사도 아니기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구해와서 수명을 길게 늘려놓은 아이를 빼면 다들 수명이 짧지 않게 남아있기도 했고.


‘천계의 법을 범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플루비아 대천사님이니, 이미 다시 쓰여진 수명에 다시 손을 대지는 않겠지.’


다만 문제는 인간계에서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당장 인간에게 ‘당신은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곧장 할 수 있는 대답이 세라피아스에게는 없었다.


‘네 신분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내게 대천사로서 허용된 만큼은 손을 써 둘 것이니. 네가 맡은 인간들이 있는 땅에서 쓸 이름도 정해 놓았다.’


꼭 세라피아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플루비아가 세라피아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보냈다.


‘벌을 받아 인간계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너는 신의 세계에서 온 자요, 천계에서 쓰던 이름 세라피아스(serápĭas)는 난초를 뜻하니...’


인간계에 다다르기 직전, 앞으로 인간으로서의 세라피아스를 뜻할 그 말, 플루비아가 말해준 이름은 세라피아스의 머리에 똑똑히 남았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칸자키 란코(神崎蘭子)가 되리라.”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세라피아스의 몸이 울창한 녹나무 위로 내던져졌다. 나무에 앉아있던 종달새들이 놀라서 짹짹거리며 날아올랐다. 인간이라면 애저녁에 죽었을 정도의 높이에서 내던져지긴 했지만, 그래도 천사였던 몸이라고 상처가 나진 않은 것 같았다.


“읏차.”


몸을 추스르고 땅에 발을 디딘 세라피아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 하늘에서 내리쬔 햇빛이 녹나무의 그늘을 뚫고 세라피아스의 눈을 때렸다.


“성가신 태양이네.”


천사 세라피아스가 타천사 칸자키 란코가 되어 일본 구마모토 현에 내려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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