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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그래. ‘병(病)’이다.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 즉, 일반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뭐, 나를 보면 ‘아파온다’라고들 하니, 그런 의미에서는 병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있어 난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도 ‘틀린’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다. 그런 취급을 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그런 시선으로 응시하지 않는 사람이 더 생소하다. 그러니 이젠 중2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에 새삼스럽게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아서야,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이 날 조롱할 때 흔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나의 어투, 나의 표현법이다. 그들에게는 괜한 잘난 체나 허세 정도, 말하자면 ‘안다니’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이 편하게 쓰는 용어로 대화하지 않으니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


유감스럽게도 이건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의 탓…아니, 탓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책들 때문이다. 들은 바로는, 집에 있는 이런저런 동화책을 전부 읽어버린 내가 그 다음에 손에 잡은 게 조부의 서재에 꽂힌 책들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책들이 아동에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한 문장은커녕 한 어절 넘어갈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그런 책들이.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재미를 느꼈던 모양이다. 옥편까지 가져다 놓고 모르는 단어에 쓰인 한자의 획수를 일일이 계산해 읽는 법을 찾은 뒤, 거기에 맞춰서 국어사전을 뒤졌다나. 책을 읽는 그 자체보다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그 때 읽었던 문장들이 무의식 속에 남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렵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나, 니노미야 아스카의 자의식.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흥미를 가졌다면 후미카 씨…사기사와 후미카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나 같은 부류에게 중2병 따위의 틀을 씌우기 시작한 걸까.


표현법이 남다르거나 타인보다 더 감성적인 사람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종종 그 표현이 있는 그대로 마음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곧잘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중2병. 아니면 허세.


뭐, 그래. 사춘기의 감수성을 서투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게 웃기게 보일 수는 있겠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면서 틀리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겠지.


그런데 대학생인 후미카 씨에게 듣기로는 이런 일이 사춘기 학생들을 상대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감성적인 표현을 밖으로 드러내면 중2병이나 허세 따위의 꼬리표가 붙는 일이, 어른의 세상에서도 자주 있는 모양이다.


세상이, 감성을 잃은 것일까.


정확한 인과관계는 모르겠다. 세상이 감성을 잃어서 감성에 중2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된 것인가, 아니면 감성에 중2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렸기 때문에 세상이 감성을 잃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세상에서 감성이 메마르게 된 것이 이런 꼬리표와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모순적이게도 그러면서 그들은 감성에 열광한다. 감성을 어루만지는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명작이라고 칭송한다. 세상을 다른 시선에서 보는 것들 또한 그렇게 추켜세워진다. 그것들이 후세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들은 알까. 그들이 꼬리표를 붙이면서 짓밟아버린 그 감성의 새싹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소리를 밖으로 내뱉으면, 또 누군가 그러겠지. 중2병이 허세 부린다고. 안 봐도 눈앞에 선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넋두리를 하고 있어도, 기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적어도 사무소 사람들은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지는 않으니까. 전무나 프로듀서가 속으로는 나를 비웃고 있으면서 그게 아이돌로서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 같으니 다물고 있을 뿐이라 해도,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적잖은 위안이다. 하지만 지금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중2병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있을지, 또 그 딱지가 붙여지는 것을 피해 자신을 숨기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중언부언이 되었나. 뭐 어떤가. 일기라는 게 이렇게 속을 털어놓으라고 있는 것이지. 그래도 아이돌인데 악의적인 덧글을 보고 기분이 처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아까 내가 그런 것에 새삼 상처받지는 않는다고 했었나? 어차피 일기이니 정정해두지. 상처받았다. 누구에게라도 이 기분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홀로 고찰을 하는 것 뿐.


내친 김에 편지처럼도 써볼까.


프로듀서.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이렇게 말했었지. 너는 방금 ‘이 녀석은 아파오는 애로구나’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과연 너는 지금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 그대로 ‘아파오는 애’, 그리고 허세에 찌든 안다니 중2병? 잠깐 아픈 것뿐인 만 14세 사춘기 소녀? 잘 팔릴만한 아이돌? 감수성 풍부한 한 명의 사람? 이왕이면 인간 니노미야 아스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쪽이라면 좋겠는데.


네가 날 뭐라고 생각하건, 너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어. 굉장한 일이야.


…역시 못하겠군. 세상에 비웃음 당하는 건 익숙하지만, 이렇게 써놓은 글을 프로듀서에게 들키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혹시나 그 때를 대비해서 잘 드는 자살용 독이라도 준비해두는 것이 낫겠다. 시키라면 어렵지 않게 준비해주겠지.


이쯤 해둘까. 내일부터는 발렌타인 데이 이벤트 대비 연습으로 바빠질 테니, 일기를 쓰다가 밤을 샌다던가 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니.


그럼 마지막으로, 새삼스럽지만 이것만 분명히 해두자.


세상이 뭐라고 비웃어도,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


세상이 중2병이라고 꼬리표를 달고 비웃어도 좋다. 그게 나라면, 애써 그들에게 맞춰줄 필요는 없다.


다가올 이벤트에서 보여주자.


그들이 비웃더라도 나 니노미야 아스카는 내 자리에 나로서 서있음을.


나의, 존재증명을.


==========


최애로 연성하면 최애 쓰알이 더 잘 나온다면서요? (카에데 씨 2차 때 연성 안 해서 폭사한 1인)


악플을 보고 상처받은 아스카, 라는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기분이 처지면 일기에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했었죠. 요즘은 SNS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그것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이돌쯤 되면 회사에서 그걸 두고 보지도 않을 테고 아스카는 그런 걸 티내지도 않을테니 이렇게 일기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아스카는 어떤 아스카인가요?

([정령의 화원]에 들어왔다.)



(수많은 들꽃이 핀 가운데에 가지런히 양손을 모은 소녀가 서있다. 옷깃과 땋아내린 머리가 바람을 맞아 흩날린다. 정령일까?)



??? "아아. 내 이름은 아스카, 꽃의 정령 아스카. 이곳의 들꽃들을 보살피고 있지. 너는 어떤 꽃을 찾아 이곳에 왔지?"


(상황을 설명했다)


아스카 "타천사를... 찾고 있다고? 아아, 란코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아까 지나가는 걸 보긴 했지만... 란코의 행방을 누군지도 모르는 자에게 알려줄 수는 없어. 어쨌든 그 아이는 쫓기는 몸이니까. 네가 란코를 쫓는 신의 끄나풀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 있나?"


(란코가 남기고 간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아스카 "이건... 란코의 그리모어...? 어떻게 이걸... 그렇다면 네가, 란코가 말했던 「눈」을 가진 자... 「구원자」라고?"


(명함을 내밀었다)


아스카 "신의 적대자, 「우상」Idol 을 만드는 자..."


아스카 "그래. 너라면, 란코를 그 「저주의 순환」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아스카 "좋아. 란코는 저쪽으로 갔어. 그리고..."



(아이템 「정령의 꽃잎」을 얻었다!)


아스카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이 꽃잎에 대고 내 이름을 부르도록 해. 나는 들꽃이 있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란코를 구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어."


아스카 "꽃의 정기가 너희를 지켜주기를."


(란코의 행방을 알았다!)


To be continued... (뻥)

대학 기숙사


란코(20) 『그럼, 갔다 올게!』

코우메(19) 『란코, 어디 가?』

란코 『응? 오늘 작가님이랑 미팅 잡혀서 나갔다 온다고 했잖아. 모처럼 시작한 일이니까 기뻐해달라고 그랬는데...』

코우메 『미, 미안... 깜빡 잊어버렸어.』

란코 『정말... 노래 가사는 어떻게 외웠던 거야?』

코우메 『「신성한 눈」의 힘으로?』

란코 『!!! 그, 그, 그 시편에 자아낸 것은 과거의 모습, 아니 이게 아니라, 그런 건 졸업했다고 말했잖아! 몇 년째 놀리는 거야, 대체!』

코우메 『프로듀서한테 받은 구마모토 사투리 사전 1권... 여기 있는데...』

란코 『꺄악! 그건 버리라니까! 안 보여, 안 들려! 안 보여, 안 들려! 다녀올게!』

코우메 『자, 약속의 땅으로! (일이다, 일~)』

란코 『안 들려! (다다다다)』



346 프로덕션 신관 회의실


란코 『여기도 오랜만이네... 데뷔했던 때부터는... 벌써 6년이나 됐나...』

카에데(31) 『어머? 란코 양 아니니?』

란코 『아, 카에데 씨!』

카에데 『그래, 분명... 성가신 섬광이네, 였던가? 후훗.』

란코 『성가신 태야...ㅇ...이 아니라... 그런 거 졸업했어요, 이제.』

카에데 『그래? 아쉬워라. 어쩐지 옷도 수수한 옥수수색이더라니.』

란코 『그러니까 그건 잊어주세요. 이제는 아이돌도 아니고...』

카에데 『그래도 재밌었는데... 그런데, 그러면 무슨 일로 온 거니?』

란코 『그림 때문에...』

카에데 『그림...? 회사 출판업 계열사가 사업을 확장한다더니, 그러면 이번에 새로 뽑았다는 삽화가가... 란코 양?』

란코 『헤헤...』

카에데 『축하해. 오늘 일 끝나면 시간 있니?』

란코 『시간은 있는데요...』

카에데 『그러면 오늘 밤엔 축하주라도 사야겠는걸.』

란코 『으윽...』

카에데 『란코 양도 어른이니까, 술 정도는 마실 수 있지?』

란코 『그, 그야 그렇지만...』

란코 『(세기말 가희...!)』

카에데 『그럼 모처럼이니까, 오늘은 카에데 특.제. 신데렐라 칵테일로 대접해줘야겠네?』

란코 『히익...!』

카에데 『...라는 건 농~담! 안심해. 작은 잔에 자근자근 마실 테니까.』

란코 『휴우...』

(덜컥)

후미카(25) 『실례합니... 아, 두 분이서 얘기하시는 데 방해했나요?』

카에데 『어머, 후미카 양! 괜찮아요, 막 나가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렇다는 건...』

후미카 『네. 이번 책의 편집자를 맡게 된 사기사와 후미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란코 『아, 후미카 씨! 잘 부탁드릴게요!』

카에데 『돌고돌아 한 돌솥밥이네. 후훗.』

후미카 『네, 미시로 부사장님이 뜻한 바가 있으신지, 아이돌 출신들로 한 팀을 꾸리셔서...』

카에데 『아이돌 출신으로 한 팀이라면 나머지 한 명은... 작가... 작가... 아하.』

후미카 『카에데 씨도 책에 관심이 있으시면 같이 일해보시는 건 어떤가요? 자신 있으신 분야가 있으면 한 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만.』

카에데 『뭐라도 괜찮은가요?』

란코 『(왠지 불안한 기분이...)』

후미카 『네.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신다고 하니까요.』

카에데 『온천 기행 같은 것도 되나요?』

후미카 『네.』

카에데 『술집 탐방도?』

후미카 『그럼요.』

카에데 『유머집도?』

란코 『그건 제가 반대할 거예요.(단호)』

카에데 『슬퍼라... 그럼 난 먼저 가볼게요.』

후미카 『네. 안녕히...』

카에데 『그럼 란코 양?』

란코 『네?』

카에데 『야.미.노.마. (수고해~)』

란코 『꺄아아아악!



란코 『정말, 카에데 씨도...』

후미카 『한결같으셔서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나저나, 슬슬 작가님이 오실 때가...』

란코 『후미카 씨는 작가님이 누군지 아는 건가요?』

후미카 『네. 란코 씨와도 친하신 분이랍니다.』

란코 『에? 친한 사람 중에 작가는 없... 아, 있다. 한 명.』

후미카 『오신 모양이네요.』

(덜컥)

후미카 『소개는 따로 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번 프로젝트의 작가님이시랍니다.』

란코 『역시...!』

아스카(20) 『오, 후미카와 란코였나.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다니, 회자정리가 세상의 이치이니 거자필반 또한 다르지 않다는 건가. 이래야 부사장의 취미에 어울릴 마음이 들지.』

란코 『(듣는 내가 부끄러워...!)』

후미카 『어라...? 두 분께는 팀원이 누구인지 연락이 가지 않았었나요?』

란코 『네. 방금 처음 알았어요.』

아스카 『왜 나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들었지만, 함께 할 동료에 대한 얘기는 없었어. 하지만 이렇게 너희들의 얼굴을 보니 그 뜻을 알 것 같아. 이런 구성이라면, 거대한 힘의 압력으로부터는 조금이나마 자유로울 수 있겠어.』

란코 『(부들부들)』

아스카 『음? 왜 그러지, 란코? 아직 진짜 추위와는 마주하기도 전인데, 벌써 추위라도 타는 거야?』

란코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후미카 『추우시다면 이불이라도 가져오는 게... 분명 휴게실에 이불이 있었죠?』

란코 『아뇨, 괜찮아요. 아니, 이불... 필요하긴 한데... 아니에요, 괜찮아요... (걷어찰 이불이 필요해요 후미카 씨!!!)』

아스카 『몸이 좋지 않다면 미리 말해주는 게 좋아. 책을 만든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작업. 유일신도 6일 만에 세상을 창조하고 하루는 쉬었는데, 그보다 하찮은 존재인 우리가 쉬지 않고 창세를 할 수는 없지. 창조주가 최선의 상황에서 그 힘을 다할 때 비로소 다른 이들에게 내보일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법이야. 무리해서 초대의 창조주를 따라하려 할 필요는 없어.』

란코 『(이걸 이해하는 내가 미워!)』

후미카 『네. 아스카 씨 말씀대로 몸이 안 좋을 땐 쉬어주는 게 좋아요. 저희는 일정이 급한 것도 아니니까, 부담 갖지 않고 말씀해주세요.』

란코 『(...후미카 씨도 이해했어?!)』

란코 『저어... 아스카 씨?』

아스카 『왜 그러지?』

란코 『그... 분명, 그런 말투는 그만 두시기로... 지난번에 작가가 되기로 했을 때... 그만 두신다고...』

아스카 『아, 그래. 란코 너는 세상의 요구에 순응하기로 했었지. 나로서는 유감이지만, 그것 또한 너의 선택이라면 존중하겠어.』

란코 『그게 아니라, 분명 그 때 저랑 같이 그만 둔다고 하셨던 걸로...』

아스카 『그래. 잠깐 그렇게 결심했던 때가 있었지. 나의 본심을 숨기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로 말이야. 하지만 그 길은 틀렸었어. 그 길은 나에겐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거야.』

란코 『잠깐.』

아스카 『세상이 원하는 대로 따른 나에게 돌아온 건 과거보다 더한 간섭과 압력 뿐이었지. 물론 반역할 생각 따위 없는 하찮은 나였지만, 그냥 따라줄 수 있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어. 이대로는 원래의 나 자신을 잃고 만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가혹한 탄압이었지.』

란코 『어이.』

아스카 『이대로는 니노미야 아스카라는 이름마저 잊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러서야 나는 깨달았던 거야. 이름을 잊기 전에 내가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야한다고.』

란코 『센카와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잖아, 그거.』

아스카 『하지만 그것도 틀린 생각이었어. 돌아오고 나서보니, 세상이 나에게 원한 건 거기에 순응하는 게 아니었던 거지. 내가 느끼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내는 나, 그런 나를 세상은 기다리고 있었어. 내가 지내던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말이야.』

후미카 『맞아요. 출판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아스카 씨를 찾아가 도와주신 것이 부사장님이라고 했었죠. 숨은 명작을 찾아내는 그 안목에는 저도 감탄했어요.』

란코 『후미카 씨도 아스카 씨 말을 이해해요?』

후미카 『네. 시적인 표현을 많이 쓰셔서, 굉장히 좋아해요.』

란코 『(편집자도 글렀어!)』

아스카 『결국 하찮은 존재의 작은 목소리에, 세상을 울리는 힘이 있었단 이야기일 뿐이야. 아무래도 지금의 세상은 그런 걸 좋아하는 것 같고. 이래봬도 등단 작가야. 나의 목소리로 이 세상과, 그 속의 존재들이 꿈꾸는 환상을 노래한다. 나에게 이만큼 맞는 일도 없지.』

란코 『(휘청)』

아스카 『그러니 함께 잘 해보자고. 열네살 때부터 어른이 되기를 추구했던, 로스트 칠드런끼리 말이야.』

란코 『(털썩)』

후미카 『란코 씨? 란코 씨? 정신 차리세요! 란코 씨!』



그날 저녁, 346 프로덕션 근처 술집


란코 『여기 한 잔 더 주세요!』

카에데 『란코 양, 주량이 많이 늘었네. 신데렐라 칵테일에 취하던 귀여운 때도 있었는데.』

란코 『저, 도저히 맨정신엔 얘기 못할 것 같아요!』

아스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만큼 스스로를 시험하는 일도 없지.』

란코 『전 아스카 씨랑 마주하는 게 힘들어서 그러는 건데요!』

아스카 『너와 같은 로스트 칠드런이었던 내 모습에는 네 과거의 편린도 숨어있어. 그런 의미에서는 나와 마주한다는 건 과거의 너와 마주하는 것과도 같지. 그렇지 않아?』

란코 『아아, 진짜! 이불! 이불도 하나 갖다 주세요!』

카에데 『이 두 사람이라면 정말 시적인 서적이 나올 것 같아.』

후미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란코 씨라면 분명, 아스카 씨가 생각한 세상을 완벽하게 그려낼 수 있을 거에요.』

카에데 『그리고 그걸 내가 노래하면 되는 거려나?』

후미카 『세기말 가희와의 콜라보레이션인가요? 그건... 먹힐 것 같네요. 한번 말씀 드려봐야겠어요.』

카에데 『부탁할게요. 세기말 가희의 이름을 걸고 말하는데, 분명히...』

란코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새로워질 때 그것을 받아들여야 우리도 전진할 수 있는 것! 왜 빛의 세계로 나오질 못하고 계속 어둠 속을 헤매이는가!(나이를 먹었으면 중2병 털어낼 때도 됐잖아요!)』

아스카 『그걸 빛이라고 정의한 것도 그쪽 세상이지. 그리고 설령 그 세계가 정말 빛의 세계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빛 아래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어. 빛과 희망 속에서 살던 사람이 어둠과 절망으로 떨어질 때도 있는 법이지. 네가 말한 대로 그 세상이 빛이고 내가 있는 세상이 어둠이라면, 나는 어둠 속에 살면서, 빛의 세계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그들의 세상으로 돌아갈 때까지 다독여주는 역할을 감내하겠어.』

란코 『아아 정말!!! 여기, 악마의 꿀을 계속 대령하라!』

카에데 『사장님, 아까 마시던 칵테일 하나 더 달래요.』

란코 『동포여! 그대는 왜 시대의 흐름을 보지 못하는가!』

아스카 『시대가 흐르더라도, 빛의 뒤에 어둠이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네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빛의 저 너머로 나아갈 용기가 없는 겁쟁이인 나는, 여기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어.』

란코 『끄으으... (털썩)』

카에데 『분명히 엄청 재미있는 책이 나을 것 같으니까. 후훗.』


끝.

또 다시, 소년은 6살 때의 꿈을 꾼다.


길 건너에 누나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과 같은 푸른빛이 도는 흑발이 아름답게 빛나는 누나. 항상 자신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는 누나.


누나를 발견한 소년은 반갑게 인사하며, 빨간 신호등을 채 보지 못하고 누나를 부르면서 횡단보도를 달려간다.


이내 소년을 보는 누나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든다. 옆에서 들린 시끄러운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소년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두 개의 전조등이 보인다.


‘번쩍’하는 빛과 함께, 소년은 몸이 붕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곧 거칠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소년의 몸은 소년의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동안 하늘에 머무른다.


―따각.


청아한 신발굽 소리가 소년의 귀에 울린다. 부드럽게 땅 위에 내려진 소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찬란한 후광을 두르고 하얀 날개를 단 회색 머리 여인의 모습이다.


“횡단보도는 조심해서 건너야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을 향해 여인은 활짝 웃어보이고, 다시 번쩍 하는 빛과 함께 사라진다.


“유우!!”


그리고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누나의 모습을 끝으로, 꿈은 끝난다.



한편, 신의 명령에 따라 인간계를 관리하는 천사들이 모인 천계에서는 대천사의 고함이 울려퍼졌다.


“천사 세라피아스! 분명 인간의 수명에 간섭하지 말라고 몇 번이고 말했을 텐데!”


여기에 지지 않고 천사 세라피아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대천사시여, 개화하지도 못하고 지게 된 꽃을 피우는 것도 정원사된 자의 사명입니다!(그러면 꽃피지도 못하고 죽게 생긴 어린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란 말씀이세요?)”


“인간의 삶은 그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수명은 천계의 법도에 따라 정해진 것! 이것을 어기는 것은 곧 신의 뜻을 어기는 것임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제가 기르는 꽃이고, 제가 기르는 양입니다! 저에게 꽃과 양을 맡긴 이상, 그 주인이라고 해도 무의미하게 생명을 해치게 둘 수는 없습니다.(제가 맡은 인간이에요. 설령 천계의 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죽는 건 인정할 수 없어요.)”


세라피아스의 반발에 대천사가 성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또 그 소리! 너는 진실로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지난 한 번을 눈감아주었다고 이제는 끝 간 데를 모르고 기어오르는 게냐? 인간의 수명을 늘려주는 것만이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삶이 고통이 될 수도 있음을 어찌 모르느냐!”


“네, 기껏 피어난 꽃이 꺾이고 밟힐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직 피지 않은 꽃이 꺾이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그 뿌리를 잘라버리는 것이 과연 옳습니까?(아직 세상에 나가지도 못한 아이의 생명을 세상에서 고통을 겪을까봐 거둔다고요? 말도 안 돼요.)”


“말은 잘 하는구나. 지난번 키쿠치 신이치는 그 피지 않은 꽃이라서 수명을 늘려주었느냐?”


“그야 다른 꽃을 피우는 사명을 위해서는 그가 필요하니까요!(어린 애 아버지잖아요!)”


대천사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다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세라피아스. 네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인간계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그들의 생명을 거둬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 너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수명에 관여한 죄로 나에게 혼나는 천사는 한둘이 아니지. 부끄럽게도 나 역시 그랬던 적이 있고 말이다. 하지만 넌 벌써 세 번째다. 지난번까지는 내 재량으로 손을 써줄 수 있었지만, 이번에도 네가 뉘우치지 않는다면 나로서도 천계의 법에 따라 널 벌할 수밖에 없다. 아직 늦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신 앞에 용서를 빌거라. 내 딸처럼 아끼는 너이니, 이번까지는 내가 어떻게든 무마해보마.”


“대천사이시여, 저는 천사로서 제게 주어진 사명을 제 방식대로 다했을 뿐입니다. 제가 잘못을 빌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아무래도 세라피아스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어보였다. 대천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썩 내키지는 않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세라피아스가 자꾸 이렇게 나오니 대천사로서도 도리가 없었다.


“천사 세라피아스, 너는 세 번에나 걸쳐 무단으로 인간의 수명에 손을 써 천계의 법을 범하였음에도, 교만하여 그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신의 명령으로 너희가 인간계를 잘 보살필 수 있도록 감독하라는 명을 받은 몸으로서, 나 대천사 플루비아는 너의 행동을 묵과할 수 없다. 이에, 신의 이름으로 너에게 다음과 같은 벌을 내린다.”


세라피아스는 고개를 숙인 채 대천사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어떤 벌을 받을지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천사 세라피아스는 이제부터 죄인, 타천사임을 선언한다. 세라피아스의 인간계 관리직을 무기한 정지하고 인간계로 추방한다! 네가 그렇게 네가 맡은 인간들을 꽃이니 양이니 하면서 아끼니, 직접 그 인간들의 삶이 어떤지 겪으며 잘못과 교만을 뉘우치거라!”


플루비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라피아스의 몸에서 후광이 사라지고, 방금 전까지 플루비아의 앞에 서있던 것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세라피아스는 천계에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떨어지면서 날개의 깃털도 하나 하나 뽑혀 나가, 세라피아스의 모습이 인간과 똑같이 변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분명히 벌을 받아 인간계로 떨어지는 것임에도, 세라피아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절망이나 원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벌을 내린 플루비아가 고맙기까지 했다. 천사로서 바라보기만 하던 인간계, 그 모습을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까. 인간계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천사의 자리에서 보면 못 볼 꼴도 많이 보였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모습도 많이 보였다. 그것을 인간의 입장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제 인간이 된 세라피아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자신이 맡은 인간들의 앞날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플루비아가 인간들을 아무렇게나 방치할 대천사도 아니기에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까 구해와서 수명을 길게 늘려놓은 아이를 빼면 다들 수명이 짧지 않게 남아있기도 했고.


‘천계의 법을 범하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는 플루비아 대천사님이니, 이미 다시 쓰여진 수명에 다시 손을 대지는 않겠지.’


다만 문제는 인간계에서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당장 인간에게 ‘당신은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곧장 할 수 있는 대답이 세라피아스에게는 없었다.


‘네 신분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내게 대천사로서 허용된 만큼은 손을 써 둘 것이니. 네가 맡은 인간들이 있는 땅에서 쓸 이름도 정해 놓았다.’


꼭 세라피아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플루비아가 세라피아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보냈다.


‘벌을 받아 인간계에 떨어졌다고는 하나, 너는 신의 세계에서 온 자요, 천계에서 쓰던 이름 세라피아스(serápĭas)는 난초를 뜻하니...’


인간계에 다다르기 직전, 앞으로 인간으로서의 세라피아스를 뜻할 그 말, 플루비아가 말해준 이름은 세라피아스의 머리에 똑똑히 남았다.


“이제부터 너의 이름은, 칸자키 란코(神崎蘭子)가 되리라.”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세라피아스의 몸이 울창한 녹나무 위로 내던져졌다. 나무에 앉아있던 종달새들이 놀라서 짹짹거리며 날아올랐다. 인간이라면 애저녁에 죽었을 정도의 높이에서 내던져지긴 했지만, 그래도 천사였던 몸이라고 상처가 나진 않은 것 같았다.


“읏차.”


몸을 추스르고 땅에 발을 디딘 세라피아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쪽 하늘에서 내리쬔 햇빛이 녹나무의 그늘을 뚫고 세라피아스의 눈을 때렸다.


“성가신 태양이네.”


천사 세라피아스가 타천사 칸자키 란코가 되어 일본 구마모토 현에 내려온 날이었다.

‘딩-동-댕-동-’


이어폰으로 들리는 음악 너머로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소녀의 기도’라는 이름이 붙은 종소리도 구식 취급을 받는 요즘 시대에, 그보다 훨씬 구식인 말 그대로의 종소리다. 매번 느끼지만, 누가 선곡을 했는지 몰라도 참 멋없는 선곡이다.


이번 점심시간 공부는 완전히 망했다. 평소에 쓰던 이어폰이 망가져서 집에 굴러다니던 여분 이어폰 하나를 주워왔는데 하필이면 이게 오픈형이었다. 종소리까지 다 들리는 오픈형의 차음성으로는 점심시간의 소란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에, 결국 이어폰을 꽂고도 그 소음을 다 들으면서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커널형 이어폰을 하나 새로 사지 않으면 내일도 공부는 글렀다고 봐야겠지.


그뿐 아니라 점심 시간 중에 학교 건물이 크게 진동한 것도 집중을 해쳤다. 무슨 일인지 알아본답시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아이들 때문에 더 방해가 된 건 덤이다. 그 난리 속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던 건 공부에 집중했기 때문이 아니라 범인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충분히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한복판에서 지진이 날리는 없으니, 이렇게 학교 건물이 울릴 정도의 사고를 칠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단 한명 밖에 없다.


“미로야 미로야 미로야~”


지금 내 앞에 나타나 내 이름을 부르며 주의를 끌어대서 이어폰을 벗게 만든 이 사람. 출석번호 11번, 체육부장 민신아. 나의 몇 안 되는 친구이지만, 나랑은 다르게 활발한 아이이다.


“나 아까 있지, 축구하다가-”


가끔은 어찌나 활발한지,


“벽 꺴어.”


사람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굳이 따지자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같이 축구를 하는 남자애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을 정도면 좀 스스로를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가뜩이나 자기 때문에 공부가 안 돼서 짜증이 나있는 내 앞에서 이렇게 싱글벙글 웃으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눈치가 없기로도 유명한데, 가끔은 정말 강제로라도 자아성찰을 시켜줘야하는지 고민이 들 지경이다.


“짱이지?”


그리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좋아, 민신아 넌 오늘 강제 자아성찰 결정이다. 나는 있는 힘껏 손에 힘을 실어 신아의 얼굴에 내리치며 말해주었다.


“잘 했어.”


철썩, 하는 소리가 온 교실에 울렸고, 신아가 코를 부여잡으며 바닥에 굴렀다.


“야, 지금 미로가 신아 친 거야? 대박...”

“우와, 신아 봐라. 데굴데굴 구른다 굴러.”

“언제 한 번 맞을 거 같더라니...”

“피 나는 거 같은데?”

“미로 손바닥이 반장 비비탄보다 쎈 거 아냐?”


다른 애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라고 하든지 나야 별로 신경 안 쓰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의실현이다. 이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아본다면 분명 신아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리라. 응. 분명 그럴 거야.


“으아... 미로야! 나 코피 나! 코피, 코피!”

“안 죽어.”


톡 쏘아붙이면서 여행용 티슈를 던져주자 신아는 고개를 휙 젖히고 휴지를 돌돌 말아 코에 쑤셔넣었다. 코피가 나면 고개를 젖히는 게 아니라 앞으로 숙여서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고 분명 여러 번 배웠을텐데, 늘 저런 식이다. 한 번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싶었지만 주변의 눈도 있어서 참기로 하고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5교시는 선생님이 출장을 가셔서 자습이라고 했으니, 점심시간에 못한 공부나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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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고 시리즈 1,2,3편을 글로 써보았습니다. 원고 때문에 정신이 없어 일단 손이 가는 대로 비루하게나마 급조하였습니다. 다들 고퀄의 축전을 쏟아내시니 나도 이렇게 하는 수 밖에 없잖아..!!! 제 맘대로 미로 1인칭 시점을 잡았는데, 쓰고보니 이거 미로 캐붕일지도...ㅠㅠ


망고 선배 생일 축하드려요!!!!!

Arendelle's Creed ~ Sisterhood ~ 프롤로그

2014. 5. 26. 22:52 | Posted by YS하늘나래

Arendelle's Creed ~ Sisterhood ~

Prologue.


안나, 나의 동생아.


아렌델이 한스의 손에 넘어갔다. 아니, 서던 제도의 손에 넘어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구나. 서던 제도 왕은 부정하고 있지만, 한스가 끌고 온 군사는 일개 왕자의 독단으로 끌고 오기에는 너무나 많았다. 분명 배후에서 서던 제도 왕이 한스를 조종한게 틀림없어. 아렌델 왕의 작위를 노리고 수십년간 준비했겠지. 그렇다면 너무도 갑작스러웠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 그 뒤로 갑자기 드나드는 횟수가 많아졌던 서던 제도의 무역업자들... 그 외의 많은 것이 설명된다.


아마 그들은 나를 잡아 마녀로 선언한 뒤 왕의 작위를 빼앗고 자기들이 그 작위를 차지할 생각이었겠지. 다행히 나는 암살단 덕분에 왕궁을 빠져나와 망명길에 올랐단다. 하지만 그들이 아렌델로 쳐들어왔다는 건 분명 교황이 나를 파문했다는 것일테고, 그러면 저들이 아렌델의 왕 작위를 차지하는 것도 시간문제야.


안나,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아버지 대까지 이어내려왔던 아렌델 왕조가 나의 대에서 끊기고 마는 것일까? 너무도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구나. 이 능력으로 한스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나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하는 이따위 능력이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나는 코로나 왕국으로 가는 배 안에 있단다. 아마 그 곳에 암살단의 본부가 있는 모양이야. 우연일까, 나를 구해준 암살단원의 이름이 너와 같더구나. 네가 살아있다면 딱 그 사람 정도의 나이일거야. 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과, 부모님이 돌아가신 항로를 따라 항해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구나.


나의 동생, 안나... 너를 보지 못한지도 13년이나 되었구나. 이제는 네 얼굴조차 생각이 나지 않아. 지금 너는 어디에 있을까. 살아있기는 할까? 내가 도망나온 왕국에 너 혼자 남아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벌써 피난길에 올랐을까? 아니, 지난 13년 동안 아렌델에 있기는 했던걸까?


급하게 빠져나오느라 너에게 썼던 편지들, 그리고 너를 찾기 위해 뒤졌던 기록들을 모두 왕궁에 놓고 나왔어. 그나마 한스 일당이 찾을 수 없는 곳에 보관되어있다는게 위안이지만, 왕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이제 영영 찾지 못하겠지. 이제는 카이 아저씨와도 헤어져서, 너를 찾을 마지막 실마리마저 사라졌어. 차라리 너와 나를 다른 방에서 기를 수도 있었을텐데, 그랬다면 너와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괴롭지는 않았을텐데. 왜 너를 다른 집으로 보내야 했을까. 그것도 단 둘뿐인 딸 중 한 명을. 이러면 안 된다는거 알지만, 네 생각만 하면 너무도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부디 살아만 있어다오. 내가 아렌델로 돌아올 때까지, 살아만 있어줘. 반드시 아렌델을 되찾고, 너를 찾아서 지난 시간동안 언니로서 해주지 못한 것들 모두 해줄게.


그러면, 다음에 또 편지할게. 내가 살아있다면.


-7.30. Elsa.




E 귀하.

ugene Fitzherbert 대공


패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렌델은 붕괴됐고, 암살단의 피해도 막심해요. 어떻게든 저희 선에서 한스의 군대를 상대하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기사단 놈들이 손을 쓴걸테죠.


다행히 엘사 여왕은 구해내서 지금 코로나 왕국으로 가는 중입니다. 선장이 여왕을 알아봤지만, 다행히 아직 아렌델 백성들의 마음은 여왕을 떠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아요. 이미 서던제도 군대는 아렌델 전역을 장악했고, 머잖아 왕의 작위까지 차지할겁니다. 교황청 깊숙이에도 기사단 놈들의 손이 뻗쳐져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죠.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왕이 침착하게 우리를 잘 따라와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니, 어쩌면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게 여왕이지만 그걸 감추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21년 평생 그렇게 살아왔을테니까요. 어제 본의아니게 여왕의 일기장을 보게 됐는데, 아직까지도 잃어버린 동생에게 편지를 쓰는 것처럼 일기를 쓰고 있더라구요. 겉으로는 강한척 하지만, 속은 꽤나 여릴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건 절대로 비밀이에요.


자세한 얘기는 코로나 왕국에 도착해서 드리겠습니다. 그 때까지 유진 대공님과 라푼젤 공주님 두 분 모두 평안하시기를. 공주님께 프라이팬은 암살단 공식 무기가 아니라고 좀 전해주세요. 코로나 암살단 안주인 되시는 문이 3년째 암살검 대신 프라이팬을 쓰면 어떡해요?


-8.1. A.

          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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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화의 상식


파문(破門)

세례 받은 신자가 교리 또는 윤리상의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를 신자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는 처벌. 신자 공동체성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행위는 영성체이므로, 역사적으로 파문의 주요 특징은 영성체에서 제외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문을 받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파문이 세례성사의 효력까지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어로는 excommunication라고 하며, 문자대로 "교류를 끊는다"라는 것이 원뜻. 일반적으로 파문에는 <소파문(minor excommunication)>과 <대파문(major excommunication)>이 있는데, 소파문은 기한부로 구제 처치가 취해지지만, 대파문은 다른 신자와의 일체의 교류의 금지, 현재만이 아니라 내세에 걸친 교회로부터의 배제를 의미했다. 유럽 중세사회에서 로마교황은 국왕과의 권력투쟁 중에서 가끔 파문권을 행사했다. 가령 그레고리오 7세에 의한 독일왕 하인리히 4세의 파문(1077), 인노첸시오 3세에 의한 영국의 존 왕의 파문(1213)은 잘 알려져 있다. 가톨릭 사회에서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곧 봉건가신 관계가 모두 끝장난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하인리히 4세는 한겨울에 카노사로 가서 교황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야했다. 다만 1570년에 비오 5세가 엘리자베스 1세를 '잉글랜드의 가톨릭 신자들을 분열시키고 박해했다'라는 죄목으로 파문하였으나 성공회를 국교로 하고 있던 잉글랜드는 잘만 굴러가서 황금기를 이룩한 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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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아렌델 때려부수고 들어가는 발암물?!


일전에 프갤에 올라왔던 yohchi님의 'Frozen X 어쌔신 크리드' 웹코믹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시작해보는 두번째 프로즌 장편입니다.

문제는 지금 쓰고 있는 '공소관의 일기'도 막 초반부를 벗어났다는 점인데, 문어발 연재가 얼마나 독이 되는지는 스스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이도저도 제대로 못끝내고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죠. 이 아렌델 크리드 같은 경우는 일단 아이디어가 팍! 하고 와서 "좋아, 일단 저질러보자!"하고 시작해보는 쪽에 해당하기 때문에, 주로 업데이트 하는 건 공소관의 일기가 되고, 이건 간간이 한 편씩 올라올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연재주기를 장담 못한다는 소리


지금 당장은 팔 상태도 그다지 좋지가 않고, 곧 기말고사 기간이 지나가면 방학이니 그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써 볼 생각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덧. 본문에 있는 A.의 편지는 저래봬도 암살자의 편지입니다. 비정상적으로 긴 빈칸 근처를 쭉 긁어보시면 뭔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덧2. 공소관의 일기 1화 리부트는 오늘 안에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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