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세상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그래. ‘병(病)’이다.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 즉, 일반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취급하는 것이다. …뭐, 나를 보면 ‘아파온다’라고들 하니, 그런 의미에서는 병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있어 난 ‘다른’ 사람이라기보다도 ‘틀린’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보는 게 타당할 터다. 그런 취급을 받아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그런 시선으로 응시하지 않는 사람이 더 생소하다. 그러니 이젠 중2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에 새삼스럽게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그런 것에 일일이 상처받아서야, 살아갈 수 없다.
그들이 날 조롱할 때 흔히 소재로 사용하는 것이 나의 어투, 나의 표현법이다. 그들에게는 괜한 잘난 체나 허세 정도, 말하자면 ‘안다니’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그들이 편하게 쓰는 용어로 대화하지 않으니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것이겠지.
유감스럽게도 이건 내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의 탓…아니, 탓이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 책들 때문이다. 들은 바로는, 집에 있는 이런저런 동화책을 전부 읽어버린 내가 그 다음에 손에 잡은 게 조부의 서재에 꽂힌 책들이었다고 한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책들이 아동에게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한 문장은커녕 한 어절 넘어갈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그런 책들이.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재미를 느꼈던 모양이다. 옥편까지 가져다 놓고 모르는 단어에 쓰인 한자의 획수를 일일이 계산해 읽는 법을 찾은 뒤, 거기에 맞춰서 국어사전을 뒤졌다나. 책을 읽는 그 자체보다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에 흥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단다. 그 때 읽었던 문장들이 무의식 속에 남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무렵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나, 니노미야 아스카의 자의식.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흥미를 가졌다면 후미카 씨…사기사와 후미카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언제부터 나 같은 부류에게 중2병 따위의 틀을 씌우기 시작한 걸까.
표현법이 남다르거나 타인보다 더 감성적인 사람은 드물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종종 그 표현이 있는 그대로 마음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곧잘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중2병. 아니면 허세.
뭐, 그래. 사춘기의 감수성을 서투른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게 웃기게 보일 수는 있겠다. 그러니 거기에 대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면서 틀리다고 치부해버리는 것이겠지.
그런데 대학생인 후미카 씨에게 듣기로는 이런 일이 사춘기 학생들을 상대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감성적인 표현을 밖으로 드러내면 중2병이나 허세 따위의 꼬리표가 붙는 일이, 어른의 세상에서도 자주 있는 모양이다.
세상이, 감성을 잃은 것일까.
정확한 인과관계는 모르겠다. 세상이 감성을 잃어서 감성에 중2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게 된 것인가, 아니면 감성에 중2병이라는 꼬리표가 달렸기 때문에 세상이 감성을 잃은 것인가. 어느 쪽이든, 세상에서 감성이 메마르게 된 것이 이런 꼬리표와 관련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모순적이게도 그러면서 그들은 감성에 열광한다. 감성을 어루만지는 소설, 드라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명작이라고 칭송한다. 세상을 다른 시선에서 보는 것들 또한 그렇게 추켜세워진다. 그것들이 후세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는 것에 이견을 제시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들은 알까. 그들이 꼬리표를 붙이면서 짓밟아버린 그 감성의 새싹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 소리를 밖으로 내뱉으면, 또 누군가 그러겠지. 중2병이 허세 부린다고. 안 봐도 눈앞에 선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넋두리를 하고 있어도, 기실 나 같은 경우는 운이 좋은 편이다. 적어도 사무소 사람들은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지는 않으니까. 전무나 프로듀서가 속으로는 나를 비웃고 있으면서 그게 아이돌로서의 세일즈 포인트가 될 것 같으니 다물고 있을 뿐이라 해도, 그런 속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적잖은 위안이다. 하지만 지금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중2병이라는 딱지가 붙여지고 있을지, 또 그 딱지가 붙여지는 것을 피해 자신을 숨기고 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중언부언이 되었나. 뭐 어떤가. 일기라는 게 이렇게 속을 털어놓으라고 있는 것이지. 그래도 아이돌인데 악의적인 덧글을 보고 기분이 처질 수도 있는 것이고. 아까 내가 그런 것에 새삼 상처받지는 않는다고 했었나? 어차피 일기이니 정정해두지. 상처받았다. 누구에게라도 이 기분을 털어놓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홀로 고찰을 하는 것 뿐.
내친 김에 편지처럼도 써볼까.
프로듀서.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이렇게 말했었지. 너는 방금 ‘이 녀석은 아파오는 애로구나’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과연 너는 지금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내가 처음에 했던 생각 그대로 ‘아파오는 애’, 그리고 허세에 찌든 안다니 중2병? 잠깐 아픈 것뿐인 만 14세 사춘기 소녀? 잘 팔릴만한 아이돌? 감수성 풍부한 한 명의 사람? 이왕이면 인간 니노미야 아스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쪽이라면 좋겠는데.
네가 날 뭐라고 생각하건, 너는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어. 굉장한 일이야.
…역시 못하겠군. 세상에 비웃음 당하는 건 익숙하지만, 이렇게 써놓은 글을 프로듀서에게 들키는 건 별개의 이야기다. 혹시나 그 때를 대비해서 잘 드는 자살용 독이라도 준비해두는 것이 낫겠다. 시키라면 어렵지 않게 준비해주겠지.
이쯤 해둘까. 내일부터는 발렌타인 데이 이벤트 대비 연습으로 바빠질 테니, 일기를 쓰다가 밤을 샌다던가 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니.
그럼 마지막으로, 새삼스럽지만 이것만 분명히 해두자.
세상이 뭐라고 비웃어도, 나는 아스카. 니노미야 아스카.
세상이 중2병이라고 꼬리표를 달고 비웃어도 좋다. 그게 나라면, 애써 그들에게 맞춰줄 필요는 없다.
다가올 이벤트에서 보여주자.
그들이 비웃더라도 나 니노미야 아스카는 내 자리에 나로서 서있음을.
나의, 존재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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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로 연성하면 최애 쓰알이 더 잘 나온다면서요? (카에데 씨 2차 때 연성 안 해서 폭사한 1인)
악플을 보고 상처받은 아스카, 라는 느낌으로 써봤습니다. 기분이 처지면 일기에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했었죠. 요즘은 SNS가 그 기능을 대신하고 그것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아이돌쯤 되면 회사에서 그걸 두고 보지도 않을 테고 아스카는 그런 걸 티내지도 않을테니 이렇게 일기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아스카는 어떤 아스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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